개인적인 일상과 경험들 그리고 기억, 무의식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화폭은 전체적으로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대체로 추상적인 화풍이지만 화면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이 작가가 꿈꾸었을 어떤 이야기들을 못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내용적으로 구상성의 면모들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아울러 그림을 전체적으로 대했을 때의 자유분방한 거시적인 느낌들과 각각의 세부를 볼 때 미시적으로 전해오는 세밀한 느낌들이 서로 묘하게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삶에서 느끼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것들을 임의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구성해냈기에 화면 가득 자유로운 감성들이 묻어나오지만 꼼꼼한 방식으로 공들인 각각의 개별적인 요소들이 그 자체로 오롯이 살아있는 것만 같다. 자유분방한 감성과 사유들이 가감 없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다는 면에서 드로잉의 면모들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판화를 전공한 이력을 살린 정밀한 세부 표현들과 각기 다른 재료들의 질감들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작업들 대하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이질적으로 묘하게 맞물려 있는 독특한 화풍은 아무래도 혼합재료 페인팅이라는 작가 특유의 그리기의 방식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혼성 재료들의 물성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일반적인 회화재료인 아크릴, 에어브러시는 물론, 잉크, 젤, 글리터, 티슈페이퍼, 마스킹 테이프, 색종이 등 다양한 재료들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화폭을 채워나간다. 촉각과 시각을 자유자재로 중첩시키면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도 조형적인 바탕을 이루는 큰 맥락의 표현과 세부의 디테일의 방식이 다른데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화면에서 점차 세부의 자유로운 움직임의 표현들로 겹겹이 화면을 구축해가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화면을 이루는 여러 겹의 층들은 작가의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느낌들과 연동된 각기 다른 물성들의 선택과 표현의 결과들이라는 면에서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들이기도 하며, 이러한 여러 겹의 그림들이 마치 수많은 상상의 타래들처럼 서로 합쳐지면서 작가의 섬세하고 복잡한 심상들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펼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겹이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화면을 완성해가는 작업 과정을 이루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때그때 떠오른 심상들을 펼치고 조절해가는 시간의 흐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마음의 편안한 움직임마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면서 작가는 현실의 갖가지 한계들을 넘어 스스로의 자유로움마저 느끼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림을 회화적으로만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느낌의 재료들을 찢고 붙이는 꼴라주나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조각조각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화폭을 넘어 입체적인 공간설치로 확장하면서 회화라는 한정된 틀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비회화적인 이러한 방식들이 서로 결합하고, 각각의 독특한 재료, 방식상의 특성들이 묘한 층을 이루면서 결과적으로 확장된 의미의 회화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재료나 기법상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이를 자유자재로 관통하는 작가의 일관된 조형성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회화적 깊이나 넓이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사각 틀의 화폭을 넘어 공간으로 자유롭게 확장하고 있는 회화적 설치 작업의 경우 제한된 의미의 회화성에 구애받지 않은 작가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면모들을 충분히 확인하게 된다. 그림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이러한 모습들은 회화성의 구현이 단순히 주어진 관습의 틀이나 재료의 물성에 국한되지 않은, 작가의 자유로운 감성의 표현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각의 틀 속에 가지런히 심상을 정돈시켜 구성한 그림들도 그렇지만 경계를 넘어 공간으로 넓혀간 작가의 작업들도 마치 스스로 자라나는 그림처럼, 자유분방하고 활기 넘치는 작가의 복잡다단한 감성들을 마음껏 펼쳐놓는다. 그 자유로운 형상들이 때로는 그림 속의 작가의 내밀한 감성의 공간들과 맞닿게 하고, 때로는 그림 밖의 다층적으로 열린 공간들로 확장시키면서 이들 각기 다른 공간들을 경험하는 관람자들과 다층적으로 교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은 다면적인 구성과 방식으로, 보는 이들의 다채로운 감성들과 조우시킨다. 작은 그림은 작은 그림대로 특유의 물성들과 세심한 표현성의 감각들을 느끼게 하고 큰 그림은 그 특유의 스케일과 공간감으로 작가가 전하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나게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느낌들로 다가오는 작가의 작업들은 일상의 나날들 속에서 그 순간순간 느꼈을 작가의 우연하고 즉흥적인 감성들이 더해지는 과정인 동시에 낯선 타지에서 젊은 날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어루만질 수 있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치유의 과정과도 겹쳐지면서 남다른 느낌들로 다가오기도 한다. 타국살이의 외로움이 빚어내야 했던 자유롭고 몽환적인 감성들이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순수한 꿈과 이상향에 대한 갈망으로 번져 지면서 이들 기억과 그리움, 상상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작가의 감성들이, 무의식과 의식 혹은 우연과 필연을 넘나들면서 그대로 화폭을 물들였던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그림 속에는 현재의 삶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일상의 느낌들이 과거에 대한 막연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겹쳐지기도 하고 이러한 작가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감성들이 꿈꾸는 미래의 희망들과 서로 복합적으로 교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하지만 비정형의 형상들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이러한 감성들을 즉흥적이고 우연한 일상의 작업들로 엮어가면서, 그리고 이에 조응하는 다채로운 재료들의 표현성, 조형성과 결합시키면서 다층적인 시간대의 기억들과 자유로운 상상, 몽환적인 감성들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일상의 친숙한 재료들을 통한 솔직한 감성 전달이나 몸에 익은 갖가지 기법의 자유로운 표현들은 단순한 그리기의 차원을 넘어 작가의 솔직한 삶마저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마저 수행한다. 동양화의 그것처럼 단순히 세상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감성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어루만지고 추스르면서 마음의 평정까지 이루게 하는, 이른바 수행성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유독 어디론가 떠나고 머무는 삶이 많았던 작가였기에 이러한 삶의 유동성을 한편으로 안정시키면서도 다시 리드미컬하게 연동시킬 수 있는 작업의 의미와 역할이 남다를 수 있었던 것 같고, 여러 겹의 재료적 질감과 조형미를 겹겹이 결합시킨 독특한 그리기의 방식도 작가 자신의 삶에서 빚어내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있어 적절한 방식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작품들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꽃과 나비의 형상들이나 저 깊숙한 심연을 연상시키게 하는 화면 속의 공간감들, 그리고 꿈과 희망에 관한 의미들이 유독 많은 각각의 작품의 제목들도 작가의 이러한 솔직한 내면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얼핏 보아 여러 빛깔의 물성들과 다기한 화면 구성들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어 복잡한 느낌들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작가가 고민하고 상상했을 마음의 흐름이 갖고 있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면모들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유연한 전체적인 형상들로 자유롭게 구성하면서도 오밀조밀함을 잃지 않은 각각의 세부 표현들에서 기대 이상의 친밀감을 더하게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그런 느낌들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복잡하기만 한 장식성의 느낌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이들 유기적이고 세밀한 표현들을 작가 특유의 회화성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인 듯싶다. 여기에는 이러한 지난하고 복잡한 작업 과정을 익숙한 작가적 삶의 시간들로 거듭하면서 우러나오게 된 자연스러움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작가는 화면 가득 복잡다단한 자신의 감성들을 겹겹의 빛깔과 형상들로 전이시키면서 유동하며 머물기를 반복하며 흐르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 그때그때 마주하는 갖가지 겹들의 마음들마저 이들 작업들로 채우고 혹은 비워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들이 작가의 내면적인 마음은 물론 작업 안팎의 공간들마저 자유롭게 변모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민병직 (전시 기획,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