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2016유리상자-아트스타」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가치 있는 동시대 예술의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6년 유리상자 두 번째 전시인, 전시공모 선정작 「2016유리상자-아트스타」Ver.2展은 판화와 회화를 전공한 제이미 리(1977년生)의 설치작품 ‘Summer Shower(여름 소나기)’입니다. 이 전시는 작가 자신이 경험한 몰입沒入행위와 그 흔적으로서의 빈 공간空 Ab-grund과 소통疏通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삶에서의 변화와 성장에 관한 예지叡智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사태事態 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의 상황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주변의 자연을 끌어들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미술과 자연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시․공간적 장면場面의 상상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의 ‘현재’를 시각화하는 연속적인 미술 설계의 어느 지점을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아보는 작가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2015년 여름, 작가가 미국 시카고에서 한 달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행했던 150㎝×20m 크기의 종이 롤 작업에서부터 출발하여 2016년 3월 서울 전시, 4월 대구 유리상자 전시로 이어지면서 150㎝×100m크기 분량으로 축적蓄積 되는 작가의 장기적 설계는 시간과 공간을 잇는 연속적인 미술 행위로서 우리 삶의 지속과 변화를 닮았습니다. 얇고 하얀 종이 표면 위에 그림을 그리듯 칼로 자르는 이 ‘컷 드로잉’ 행위는 시카고에서의 거센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여름 소나기의 음율 속에서 막막하고 불안했던 경험의 시간 흐름을 망각하고 세계와 진정으로 교감하는 무아지경의 몰입행위이며, 젊은 작가가 어떤 정서적 위기를 딛고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매개적 과정입니다.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소외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준다고 여겨지는 이 몰입행위는 즉흥적이고 직관적이며, 반복과 지속적인 ‘컷 드로잉’ 행위에 의해 꽃잎이나 씨앗이 포개진 모양 혹은 생명체의 성장을 상징하는 듯 방사선 모양의 빈 공간과 일정 굵기의 선형 지지체를 남깁니다. 종이를 잘라내면서 비어진, 아무것도 없는 부재의 공간은 주변의 풍경과 관객의 참여를 담아내며, ‘지금, 여기’의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씨앗의 상징성, 그리고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고전의 지혜를 되새기게 합니다. 또한 이 지점은 작가의 작업이 이성理性과 자신을 넘어서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순간은 ‘컷 드로잉’ 작업과 전시를 위한 설치의 과정에서 타인과의 만남, 그들과의 유대와 공감, 나눔의 기억들과 함께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략 7미터 높이의 천정과 흰색 바닥이 있는 유리상자 공간을 채운 듯 비운 하얀 종이 설치물Hand Cut Paper Installation은 중력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려 매달리거나 한쪽을 비스듬히 들어 올린 종이 집합 조형체입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소나기가 거친 후 맑고 빛나는 ‘지금, 여기’의 상황과 현장에 대응하는 심상心狀의 언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회화繪畵의 화판畫板 위에서처럼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듯, 손으로 종이를 하나하나 자르고 그 결과물을 이어 설치하여 공간에 정서적인 드로잉을 행한 것입니다. 이 드로잉은 과거 어느 시점의 기억이 가득한 시공간적 표현이기도하지만, 인간 삶의 성장과 정서를 구축하는 매개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알아가기 위하여 이 드로잉을 행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이 드로잉은 기억과 또 다른 상상에서 기인하는 신체행위이며, 그에 관한 매력적인 자기 기록일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Summer Shower’는 자신을 비롯한 세계의 존재와 부재를 참조하는 드로잉 놀이이며, 그 기억의 신체행위를 반복하는 작가의 심리적 환상이고, 이를 재구성하는 회화 현장의 행위적 ‘사건’입니다. 그가 다루려는 것은 이성과 개념적 해석에 의해 가려지거나 제거되었던 기쁨, 행복의 쾌감과 순수 행위에 관한 것이며, 인간 성장에 관한 감성적 기억들을 담아내려는 에너지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의 성장을 이으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