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파편과 전체 사이에서 시선은 요동치고 분석은 멈춰졌다. 제이미리의 <Summer Shower>를 본 필자의 첫 느낌이다. 상당한 크기, 그러나 가벼운 것이 분명한 것이 공중에 부유 중이다. 목격한 것은 덩어리가 아닌 조각들. 정확히는 잘라내어진 빈 자리, 혹은 구멍들이다. 잘라내어진 구멍들 속에서 인공의 빛이 쏟아졌다. 빛은 다시 바닥과 벽면에 그림자라는 또 다른 흔적을 만들어 낸다. 매달린 덩어리보다 선명한 그림자. 다시 질문. 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시각예술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은 언제나 미학용어의 새로운 조어造語보다 빠르다. 제이미리의 썸머샤워 역시 정해진 틀 안에 넣기엔 모두 섭섭하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텅 빈 곳이 있기 때문에 수레의 쓰임새가 있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노자

유형은 다만 무형에 의해 만들어졌다.有形但爲無形造

비워져 있음(空)은 썸머샤워에서 매우 중요한 범주다. 이를 기반으로 제이미리는 구멍을 내는 조작과 완성된 거대한 덩어리를 공중에 매달며 계획이 아닌 직관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의 시각적 싸인은 1.움직임(動勢. Movement), 2.장면(場面. Sequence), 3.빈 공간(空. Ab-grund). 세 가지다. 대부분 정지한 화면이라 느끼는 암묵적 약속의 조형물과는 다르게 환경적 영향에 따른 변화가 분명히 짐작되고, 기계적 반복이나 운동으로 한정하기엔 그 움직임이 미묘하다. 동세, 혹은 무브먼트라 칭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썸머샤워는 어느 부분을 어떤 시간에 보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매우 달라진다. 일반적인 조형물이 아닌 시간에 따른 빛과 그림자의 형상과 시간과 관계없이 목격자의 작품을 바라보는 부분에 따라 구성이 매번 다른 양상을 띤다. 그런 의미로 장면, 혹은 시퀀스라 읽는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전면에 펼쳐진 것이 비워진 자리(空)들에 대한 작가의 직관, 직감, ‘좀 더 의미를 둠’이다.

드러내기 위한 시각 예술 작품에서 비워놓기 위한 조작(구멍내기)을 펼치는 일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것은 작가의 내면적 사유에서 비롯되며, 그 흔적은 드로잉이라 불리는 일련의 평면작업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가독 가능한 형태의 화분, 하트, 빗물, 눈물들과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얽어맨 듯한 구조들은 언어적 해석 전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범주의 작가의 기억 혹은 경험에서 비롯된 파편들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파악된 작가적 성향은 관찰 대상 및 사유의 대상이 외부로 향하지 않고 작가 본인의 내면에 보다 면밀히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유로 발아된 예술적 발로는 특정한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의 형식이 아닌 특정한 무엇을 통해 드러나는 예술적 정취와 예술적 분위기, 그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폭넓은 예술 연상과 환상들이다.

결국 우리가 목격한 것은 바퀴통의 서른 개의 바퀴살인 동시에 그 살과 살 사이 비워있는 공간 두 가지 모두다.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덩어리와 그 덩어리를 파먹은 구멍들, 그 구멍들 사이로 쏟아지는 빛과 바닥에 맺힌 그림자 역시 모두 목격한 사실들이다. 거기에 작가가 설정해 놓은 비밀이 하나 더 있다. 공중에 매달린 썸머샤워는 아주 작은 환경에도 쉽게 움직일 수 있지도 모른다. 갤러리 문을 열고 닫을 때 부는 바람이나 누군가가 내뺃은 기침에도 조금 전과 다른 포즈의 썸머샤워를 만날 지도 모른다.

작가는 썸머샤워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썸머샤워의 일부로 초대한 것일 지도 모를 일이다.

김최은영 (미학, 경희대 겸임교수)